주변
렌즈 안에서는 청미천 강건너 마을도
아주 가깝게 보이는군요.
저 산이 충청도와 경계를 이루는
오갑산.
새로 쌓은 뚝방이 보이고 그 너머 흐리게 마을이 보입니다.
당진리, 현수리.
당진리는 전주 이씨 광평대군파 후손들이 자리잡고 살아온 터전.
저의 8대조이신 증공조참의 이렴李簾 할아버지께서 제천 백운산 아래서
이곳 여주 점동면 사곡리 해평윤씨 상자 민자 할아버지 따님과 혼인하여
청미천 건너에 자리잡아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저는 이렴 할아버지의 아드님 호군공파 李世憲의 파조로 둔 자손으로
아버님이 당진리에서
해평윤씨 어머님과 혼인하여
처가 옆으로 이사하여 모래실에 살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연기가 피어오르니 이상하죠?
옛날엔 아침저녁으로 온 집집마다
연기가 오르지 않았겠습니까?
저 연기는
우리 옆집에 자리한 외가 지금 외숙모님 집인데
장작보일러 연기가 오르는 거죠.
이미
그 수명을 다한 우리 집.
1980년 신축하였으니
내년이면 30년.
초라합니다.
삼형제 중 누군가 새로 지어야 할 듯.
골목길.
키작은 영산홍은 올봄 큰형님과 심었습니다.
해평윤씨 동강공파 종택
새벽이 밝았습니다.
뒤울안.
수령 200년 고목이 푸른 빛에 쌓여
그 모습을 온전히 드러내지 않습니다.
오랜 고목엔 귀신이 깃든다고 했습니다.
이 고목에도
귀신이 깃들어 있을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경외감을 지녀야 마땅하죠.
고목은 늘 새로운 시의 영감을 던져주곤 합니다.
중학교 시절 시화전에 냈던 시 [고목]의 소재이고
지난 겨울 시 [개종改宗]을 썼다.
영산홍 붉은 빛이 화려하게 슬픕니다.
붓꽃이
5월의 고고한 빛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어제까지 봉오리만 내밀었는데
비로소 오늘 아침 개화를 마쳤습니다.
수많은 꽃대궁이
개화를 기다리고 있지요.
붓꽃이야말로
5월의 꽃 아닐까 싶어요.
[참조]
전주이씨와 광평대군파
광평대군(1425-1444)은 세종대왕과 소헌왕후 심씨의 제5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좌의정 신자수(申自守)의 딸을 부인으로 맞아 영순군(永順君)을 두었으며, 영순군은 남천군(南川君), 청안군(淸安君), 회원군(會原君)을 두었다. 영순군의 묘소는 현 서울 강남구 수서동 광수산(光秀山)에 있다. 광수산 아래에 영순군의 아들 3형제의 집을 지어 3궁(三宮)이라 일컬었다. 이때부터 이 마을을 `궁말'이라 불렀으며, 광평대군파의 근원지가 되었다.
선조 때 대학자 이의건(1533∼1621), 완산부원군 이욱, 효종 때 우의정 완남부원군 이후원(1598∼1660), 이조참판 정간공 이선(1632∼1692), 숙종 때 영의정 혜정공 이유(1645∼1721), 대사헌과 대사간을 역임한 완릉군 이현록, 우참찬을 지낸 문정공 이최중, 한성판윤과 공조. 형조. 이조판서를 역임한 문정공 이목연 등이 후손들이다.
< 고금석림(古今釋林) > 40권을 편저하고 승지. 참판. 대사간을 역임한 이의봉(1733∼1801), < 존주휘편(尊周彙編) > 20권을 편찬하고 대사간. 관찰사를 역임한 이의준, 헌종 때 우의정을 지낸 문익공 이지연 등도 있다. 한말의 포도. 금위. 어영대장과 형조판서를 역임한 양숙공 이경하(1811∼1891), 법부대신 이범진(1853∼1910), 의병장 이범승, 해아밀사(海牙密使)로 유명한 이위종도 있다. 조선시대에 전주이씨 문과 등과자(登科者) 850명 중 115명을 냈다. 초대 국무총리 이범석(1900∼1972), 초대 서울시장 이범승, 전 서울시장 이원종도 후손이다. 인구는 5만명이 넘는다. 광평대군 묘역인 서울 강남구 수서동 약 13만평 일원은 지방문화재 제48호다. 이곳에는 700여 기(基)의 왕손의 묘소가 있다.
< 정복규 논설위원, 한국의 성씨 강사 >